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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딴 선수가 메달과 인형을 들고 독자와 시청자를 향해 환하게 웃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옷을 갈아입고 시상대에 오릅니다. 동메달, 은메달, 금메달 순서로 VIP들이 메달을 걸어줍니다. 그리고 5~2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맨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메달 사진은 세 가지가 만듭니다. 주최측이 금은동 위계에 맞춰 높이를 달리한 시상대, 그 앞에 배치된 카메라, 그리고 주인공인 선수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표정입니다.
예전의 메달 세리머니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 본 경험이 적은 선수도 많았을 테고, 움직임을 포착하는 카메라 기술도 지금 같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시상대 사진을 떠올려 봅니다.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입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걷어내면 무척 정적인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2026년 가을, 일본에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대회 동안 경기장을 돌며 시상대와 코트를 지켜봤습니다.
신문과 인터넷이 고르는 사진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승부가 갈리는 결정적 순간, .수를 따냈을 때 터지는 포효, 승부가 확정되는 순간, 그리고 시상식의 기쁜 표정입니다. 독자에게 한두 장의 사진으로 ‘이겼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진이 선택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 스포츠 문화에서는 승리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한 장을 찾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세리머니에도 방향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세리머니는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향하고, 어떤 세리머니는 팬을 향합니다. 코치나 가족을 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해 본 사람이 잘한다 — 카메라를 향한 세리머니
세리머니도 해 본 사람이 잘합니다. 농구와 야구처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종목은 세리머니가 발달해 있습니다. 득。하면 어디로 달려가고, 어떤 동작을 하고, 누구와 끌어안는지가 이미 하나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수들도 그 문법을 보면서 자랐을 겁니다.
펜싱 오상욱도 그랬습니다. 경험이 많은 선수일수록 렌즈가 어디 있는지 알고, 기자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압니다.
바다이야기백경
어쩌면 카메라 건너편의 독자와 시청자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안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이걸 연출이라고 부르기는 좀 뭣합니다. 오히려 기자와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여유에 가깝습니다.
금메달을 깨무는 장면은 한때 시상식 사진의 공식이었습니다. 선수가 스스로 한 경우보다 사진기자들이 요청한 포즈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문 제목에는 ‘금맛 깨물어 보는’ 식의 클리셰가 따라다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요청이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장면은 여전히 나왔습니다. 배드민턴 이소희·백하나 선수의 여자복식 시상식에서도 금메달을 깨무는 포즈가 나왔습니다.
29일(현지시간) 일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립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이소희와 백하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9.29 이치노미야(일본)=뉴시스
다만 지면에는 별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다른 세리머니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자연스럽게 터트린 감정의 순간이 넘쳐나는 시대에, 연출된 느낌의 한 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납니다. 이제 그런 사진을 고를 이유가 줄어든 셈입니다.
● 무대가 만든 세리머니 — 펜싱의 검은 배경
연출은 선수와 기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펜싱 경기장이 좋은 예였습니다. 예선에서는 피스트 두 개를 운영하다가, 결승에서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조명을 껐습니다. 덕분에 결승의 세리머니는 검은 배경 위에서 이뤄졌습니다. 선수만 빛 속에 남습니다. 사진기자가 아무리 애써도 만들 수 없는 화면을 무대 설계가 만들어 준 겁니다. 세리머니의 세 번째 연출자는 주최측입니다.
● 찍는 사람이 바뀌었다
일부 경기장에서는 또 다른 장면을 봤습니다. 코치진이 선수들의 세리머니를 직접 연출하고, 직접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진기자들의 시야가 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관중석의 팬들도 놀라웠습니다. 대포처럼 긴 망원렌즈를 든 팬이 꽤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사진기자는 우선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같은 장면을 노리는 또 한 명의 촬영자일 뿐입니다.
세리머니를 기록하는 주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릴게임신천지릴게임소스
. 예전에는 지면에 실린 한 장이 그 순간의 유일한 기록이었습니다. 이제는 코치의 휴대전화와 팬의 렌즈가 같은 순간을 동시에 남깁니다. 그중 어느 장면이 대중의 기억으로 남을지는 이제 아무도 모릅니다.
● 주인공을 찾아서 — 단체 종목
농구와 야구는 팀워크의 종목입니다. 우승이 확정되면 모두가 코트와 그라운드로 뛰어나옵니다. 태극기를 펼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태극기 세리머니를 주도하는 쪽은 대개 팀의 젊은 선수들이었습니다. 경기를 이끈 선수는 오히려 뒤쪽에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혼돈 속에서 누구를 주인공으로 잡을지는 순간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남자농구 결승에서 그 고민을 풀어준 것은 생수병이었습니다. 한국은 9월 20일 결승에서 개최국 일본을 67-57로 꺾고 12년 만에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현중은 27。 18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2007년생 에디 다니엘이 물병을 들고 에이스 이현중에게 물을 뿌렸습니다.
20일 오후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이현중이 동료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나고야=변영욱 기자
물방울이 공중에 흩어지고, 이현중은 동료를 끌어안은 채 소리를 지르고, 물을 뿌린 다니엘도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계획된 동작이 아니라 그 순간 터진 장난이었습니다. 그 우발성이 사진을 살렸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 사람을 향한 세리머니
1일 일본 나고야시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결승에서 한국 허미미가 몽골 아리운자야 테르비시와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각 국 사진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나고야=변영욱 기자
수영 김영범은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한국 수영 친구들을 향해 하트를 크게 그렸습니다. 마침 선수들 바로 앞자리에 있던 카메라에 제대로 담겼습니다.
테크볼 이준석의 세리머니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축구처럼 발로 하는 운동이라서일까요. 승리 후 그는 축구 선수처럼 감독을 향해 달려가 포효했습니다. 그 문법이 끝나자 관중석의 어머니를 향해 울었습니다
릴예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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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저도 그의 눈물에 뭉클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원하는 길에 승부를 걸어 본 청년, 그리고 그 결정을 믿어 준 가족의 지난 몇 년이 그 장면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 아무것도 향하지 않은 세리머니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은 벽 앞에서 골똘히 문제를 풉니다. 상대 선수가 있지만, 경기하는 순간만큼은 벽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읍니다. 그 표정이 진짜 사진이었습니다. 정작 메달이 확정된 뒤 시상식에서는 어색해 보였습니다.
아직 세리머니의 문법이 만들어지는 중인 종목인 셈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어색함 역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장면은 근대5종 성승민의 포효였습니다. 시상식도, 결승선도 아니었습니다. 장애물 경기를 통과하면서 중간 기록을 확인한 그가 혼자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승리를 직감한 듯했습니다. 그 포효는 카메라도, 관중도 향하지 않았습니다. 장애물 아래에서 누군가 망원렌즈로 자신을 찍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 다시, 한 장의 사진
메달 세리머니와 우승자에 집중하다 보면 과정보다 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많은 현장에서 수많은 순간이 동시에 벌어지면, 취사선택의 기준은 결국 승리와 환희라는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힙니다. 고른 관심보다는 뾰족한 누군가에게 초。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90년 전 손기정은 카메라도 관중도 향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정적인 한 장이 지금까지 남은 것은, 사진 바깥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회의 수많은 포효와 하트와 눈물 가운데 100년 뒤에도 남을 사진은 무엇일까요. 아마 그 순간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품은 사진일 겁니다.
10월 2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다목적광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인도를 꺾고 금메달을 딴 한국 김제덕 김우진 이우석. 메달 세리머니에 앞서 김제덕과 이우석이 손가락을 맞추고 있다. 오카자키=변영욱 기자
아시안게임은 내일 일요일 폐막합니다. 한국은 어제 2일 기준 금 33, 은 39, 동 62개로 중국, 일본에 이어 3위입니다. 오늘 축구와 양궁, 브레이킹 등에서 몇 개의 금메달이 더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5~2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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