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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광태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9-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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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머와 삼촌 집안 거덜내도 명절 웃음 책임진 ‘철부지 삼촌’들 재치가 그립다 삼촌들 유머의 비밀은 자기 비하… 이젠 누굴 보고 웃어야 하나 일러스트=이철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집엔 ‘망할 삼촌’이 꼭 한 명씩은 존재한다. 이 삼촌들은 부모나 형제에게 돈을 빌린 후 나 몰라라 하거나, 사업 자금을 마련한답시고 고향의 고추밭을 몰래 팔아먹거나, 술을 마시고 밤늦게 돌아오다가 어디 한 곳 꼭 부러지는 게 주특기인 분들이다. 집에서 셋째, 혹은 막내인 사람들. 허세가 많고 철이 없다는 공통.을 지녔는데, 그래서 늘 집안의 유머 담당이기도 하다. 내게도 그런 삼촌이 한 분 계셨다. 이분은 좋은 대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건설회사에서 짧은 직장 생활을 거친 후 곧바로 부동산 시행사를 차리셨는데, 그때부터 우리 집안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서울에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였다. 삼촌은 명절 때마다 이제 막 ‘뽑은’ 듯한 중형차를 몰고 나타났는데, 근사한 양복에 항상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었다. 나와 사촌들은 삼촌이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다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삼촌의 차가 보이면 너나없이 신발을 꿰차고 동네 어귀까지 달려 나갔다. 그때마다 삼촌은 곧장 들어가지 않고, 우리를 태운 채 신작로를 한 번 빠르게 달려주었다. 아, 그때 삼촌의 차는 얼마나 안락했던가! 그때 삼촌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삼촌은 우리에게 만 원짜리 한두 장을 미리 찔러주었고, 엄마에겐 비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하지만 엄마들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우리의 만 원짜리를 압수해 가곤 했다). 모바일릴게임 종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은 그런 삼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겉멋만 잔뜩 들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둥, 집 한 채 없는 주제에 차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둥, 잔소리가 많았다. 삼촌은 그런 형님들의 말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나 작은어머니들을 향해 “우리 형수님들이 쪼잔한 남편들 만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네” 같은 ‘뒷담화’ 아닌 ‘뒷담화’를 시전한 후, “내년엔 제사 거르고 제가 모두 제주도로 모실게요”라고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말이 그나마 삼촌을 밉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 명절 후 내 어머니의 평가였다(어머니는 명절만 되면 화가 많아지셨다). ‘망할 남편’들은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할 뿐, 아내들이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의 말을 따르자면 ‘공감’이란 상상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자신 안에 재구성하는 일이다. 타인의 고통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기도 한데, 유머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유머는 나의 고통과 나 사이의 거리를 벌이는 일, 즉 자신의 고통을 타자화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공감은 ‘저 사람의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작동되지만, 유머는 ‘내 일이지만, 이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리’다. 타자와의 거리는 공감에도, 유머에도, 모두 중요하다. 손오공게임 다운로드 우리는 가까운 타자(가족)에게는 유독 공감하지 못하는 편인데(반대로 세상 반대편 사람에게는 절절히 공감하고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그건 좀 당연한 면이 있다. 가까운 타자의 고통에는 나의 책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명절날 고생한 이면에는 아버지의 책임이 섞여 있고, 그 책임을 인정하기 싫은 아버지는 대체로 외면하는 쪽을 택한다. 반대로 유머는 ‘적절한 거리’가 핵심이다. 이웃집 아저씨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을 ‘쪼잔하다’고 비난하면 조롱이 되지만, 삼촌이 하면 유머가 된다. 삼촌 역시 그 형제의 일원이고, 삼촌의 비난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 있다는 것. 그것이 삼촌들 유머의 비밀이기도 하다. 우리의 ‘망할 삼촌’은 강남에 커다란 건물을 분양한답시고 할머니의 논을 팔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에게도 얼마간의 돈을 융통해 갔지만, 사기를 당하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마저 당하면서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수년 동안 잠적해 있다가 어느 명절날 갑자기 나타났는데, 곁에는 낯선 숙모와 세 살 난 아이도 함께였다. 말하자면 삼촌도 이제 작은아버지가 된 것이었다. 수원에서 분식집을 한다는 그분에게선 그 옛날 유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숙모를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년의 얼굴만 있을 뿐. 나의 ‘망할 삼촌’뿐만 아니라, 이젠 세상 모든 ‘삼촌’들이 다 멸종해 가는 것 같다. 젊은 아버지들은 모두 외동이거나 형제자매라고 해봐야 둘뿐이니, 그 호칭도 .。 사라질 것이다. 그럼 이제 집안의 유머는 누구의 몫인가? 우리의 명절이 .。 더 밋밋하게 변해 가고 있다. 안에 재구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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